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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화이트블럭
정정엽: 걷는 달WALKING ON THE MOON
2021년 8월 26일(목)~10월 31일(일)
경기도 파주시
2021-08-27
정정엽: 걷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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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아트센터화이트블럭
죽은 새로부터

글: 강성은(아트센터화이트블럭)

새와 여성이 나란히 있다. 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모르게 가만히 몸을 뉘고 있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얼굴을 모자로 가린 채 하늘을 향해 누운 듯 보이지만 다시 보면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몸을 뒤로 젖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사람과 새는 같은 공간에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서 조합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과장된 새의 크기로 인해 이 그림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합리적 이성적 사고로 구축된 사회에서 ‘죽은 새’는 관심과 돌봄의 대상이 아니다. 미관(美觀)과 오염방지를 위해 서둘러 치워야 하는 오염물질일 뿐이다. 이 그림에서 새는 인간중심의 이분법적 사고로 바라본 자연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과 동등한 피조물인 생명이 다한 새의 처지를 공감한다. <죽은 새와 함께>(2021)는 지금껏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담아냈던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작가의 태도, 즉 생명의 생성과 소멸, 사회에서 소외된 약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러한 대상과의 공감과 연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정엽은 항상 중심에서 벗어난 소외되고 약한 존재를 그렸다. 캔버스 가득 밥이나 떡에 넣어 먹는 곡물인 팥과 색색깔의 콩을 그린다. 팥과 콩은 캔버스에서 작가의 얼굴도 되고 바다도 되고 산도 된다. 나물도 그린다. 나물은 일상적인 반찬이라기보다 차례나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사용 음식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명절이나 제삿날이 되면 반나절은 나물을 다듬어야 한다. 수북이 쌓여 있던 나물은 껍질을 벗기고 다듬고 나면 그 양이 반으로 줄어든다. 정정엽이 그리는 나물은 이렇게 여성의 노동력이 들어가 잘 다듬어 놓은 나물이다. 주방 한쪽에 있는 요리에도 쓸 수 없는 싹이 난 감자는 캔버스에서 외계생물처럼 거대증식해서 그 싹을 마치 촉수처럼 사방으로 뻗친다. 곡식과 나물과 감자 싹은 부엌에서 정정엽의 그림으로 들어왔다. 눈에 보이기만 해도 움츠러드는 벌레와 나방은 화면 가득 주인공이 된다. 여성의 노동처럼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고 주변부로 밀려난 것들이다.

정정엽의 20번째 개인전 ≪걷는 달≫은 ‘여성’을 그린 전시다. 이 전시의 발단이 된 것은 2019년 홍성 이응노의 집(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에서 열린 제 4회 고암미술상 수상작가전 ≪최초의 만찬≫에 출품된 동명의 작품 <최초의 만찬 2>이다. 30여 년에 이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망라해서 보여주는 전시였는데 그 곳에서 처음으로 정정엽이 인물을 그린 작품을 보았다. <최초의 만찬 2>에는 고릴라 가면을 쓴 페미니즘 작가 그룹인 게릴라 걸즈의 멤버와 모자와 목도리를 두른 ‘평화의 소녀상’을 제외하곤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여성들이 만찬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형식을 빌어 그린 그림이다. 얼른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 자리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각각 ‘미투’ 운동의 시초가 된 서지현 검사, 이토 시오리, 흰 한복을 입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과 같이 잘 알려진 여성도 있고 작가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 시인 김혜순과 태국 노점상 주인, 동료 작가 등 이름을 대도 알아볼 수 없는 여성도 있었다. 작가는 한 화면에 모여 있던 인물들을 다시 별도의 캔버스에 몇 명씩 나누어 그렸다. 각자의 특징이나 상황이 더 잘 묘사되고 있다. 이 만찬에 초대된 여성들은 정정엽과 같이 활동을 하거나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최초의 만찬≫전시 이후 방문한 정정엽의 작업실에서 작가는 여성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국경을 넘기 위해 모여 있는 여성들의 뒷모습(<국경>, 2020), 오래 전 잡지에서 잘라 놓은 몸빼 바지를 입고 시골장 런웨이를 걷는 할머니들(<할머니 특공대>, 2021), 비를 정면으로 맞으며 걸어가는 여성들(<빗길>, 2020)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심미자 할머니(<벚꽃보다 나팔꽃이 더 예쁘다>, 2020)와 2018년에 그리던 장애인 인권운동을 한 최옥란(<벽 앞의 웃음>, 2018~2021) 등을 만났다.

작품의 기법 또한 많이 달라진 걸 보았다. 미술관에서, 까페에서, 바닷가나 숲길에서 걷거나 정지해 있는 여성의 몸짓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에서 붓질과 색은 단순해졌다. 여성의 몸은 배경과 하나가 되어 있고 여성의 형상은 간략한 선으로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홀로 있는 여성은 외롭고 쓸쓸해 보이지만 약해 보이진 않는다.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행진하는 여성(<빗길>, 2020)은 작게 그려졌지만 힘차고 용감하다. 몸빼를 입은 할머니들의 걸음걸이 또한 유쾌하다.

2006년 아르코미술관 개인전 《지워지다》에서 작가는 붉은 드로잉으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아시아의 익명화된 여성들, 가부장적 폭력 앞에 맨 몸으로 서 있는 여성들, 지구촌을 떠도는 제3세계 이주노동자들, 멸종 위기에 처한 동 식물 등이다. 작가가 붉은색을 쓴 이유는 힘의 논리로 밀려난 존재들을 증언하고자 했으며 그 절실함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그들은 지워져 없어지지 않고 정정엽에 의해 다시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붉은 색은 정치적으로는 사용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피를 연상하게 하며 그것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그의 작업에서 붉은색은 곧 생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성의 풍성한 몸짓을 그린 신작 드로잉 역시 붉은색이다. 첼로를 연주하는 여인의 몸짓은 마치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하고 일상적인 여성의 움직임은 춤을 보는 것 같다. 단순하지만 생명을 품고 보듬는 여성의 몸짓이 붉은 잉크로 피어난다.

정정엽이 본격적으로 인물을 그린 것은 2009년 개인전 ≪얼굴 풍경≫에서다.¹ 이 전시에서 작가는 “친분과는 상관없는 동시대의 우정”을 나눈 “친구들을 소개”했다.² <최초의 만찬 2>에서와 같이 작가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9년 ≪얼굴 풍경≫전에 전시되었던 작품 중 5점과 신작 6점을 ‘얼굴 풍경 2’로 묶어 같이 전시한다. 2009년에 제작한 사진작가 박영숙과 미술가 윤석남, 여성학자 김영옥, 시인 김혜순 그리고 정정엽 자신을 그린 인물화에 여성학자이자 여성문화이론 연구소 대표인 임옥희, 제주에서 농사짓는 최복인, 정의기억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 쉼터에서 18년간 일한 고 손영미 소장,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다 숨진 최옥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심미자, 영화비평가 권은선을 그린 인물화를 같이 전시한다. <최초의 만찬 2>에 초대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 정정엽의 작업과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생각을 나누었던 여성들이다. 2009년에푸른색 배경에 붉은색을 사용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초상 위에 각 인물의 특징을 과장되게 나타낸 이미지들을 겹쳐 그렸다면, 신작 6점에서는 이전에 제작한 작품과 그리는 방식을 완전히 달리한다. 과감한 붓질에 인물의 묘사는 생략되고 분위기가 강조되었다.

정정엽은 이 인물을 한 명, 한 명, 그저 외모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개별 인물이 가지고 있는 삶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공감하며 각자의 삶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는 종종 여성들은 스승 없이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간다고 말한다. 이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평범한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말로서 의미를 갖는다.

정정엽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향해 내달리던 시대다. 숨 막힐 듯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과 ‘여성의 노동’은 비가시적인 존재다. 가정 경제를 위해 바깥 일을 하는 남성을 ‘보필’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먹는 음식을 책임지는 일이 여성의 일을 여성의 일로 여겨왔다. 애초에 여성이 ‘집안 일’만 도맡아서 한 것도 아니지만,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사회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출산과 육아는 물론 청소와 빨래, 요리 같은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여겼다 기존의 남성중심의 지배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인정받지 못했다. 정정엽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성작가 일변도인 당시의 미술계의 상황을 목도한 정정엽은 여성작가들의 모임을 만들고 여성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자 했다.³ 그의 비판적 시각과 실천은 미술계 안에서만 작동한 것이 아니다. 인천에서는 한 공장에 취업해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운동을 했다.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탁아소를 마련하여 사회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참여적 활동이 정정엽 작업의 근간이 되었다. 정정엽은 이렇게 여성작가들과 그룹 활동했던 이유를 “여성의 삶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사회에서 고립되고 단절되는 것이 싫어서 동료를 찾아 나선 것”이라고 말한다.⁴ 《걷는 달》은 정정엽이 이렇게 찾아나선 동시대를 사는 보편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전시다.

[1] 정정엽의 인물작업은 1980년대 노동운동을 하면서 제작한 <봄날에>(1988), <올려보자>(1988)와 같은 목판화가 있다. 또한 1991년 《여성과 현실》전에 출품되었던 <집사람>과 <어머니의 봄>, 그리고 <식사준비>(1995)와 같은 작품에서 여성의 노동과 현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2] “내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일면식은 있으나 친분과는 상관없는 동시대의 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굴 풍경≫, 아트포럼 리, 2009 작가 노트 중

[3] 정정엽은 1985년 미술동인 '두렁'에 가입했으며 그룹 '터'를 조직해 활동했다. 인천 '미술패 갯꽃'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민미협 여성미술분과'에서 활동하다가 1988년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과 함께 '여성미술연구회'를 만들었다. 1990년대에는 페미니즘 미술그룹 ‘입김’의 멤버로 활동했다.

[4] 장파, 정정엽 인터뷰(2021. 7. 20) 중
운영시간TIME
월~금요일 11:00~18:00
토~일요일 및 공휴일 11:00~18:30
휴관일HOLIDAY
휴관일 없음
전시참여PARTICIPATION
작가: 정정엽
주최: 아트센터화이트블럭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소개ARTIST
내용없음
전화PHONE
+82 (0)31-942-4401
관람료FEE
3,000원
무료: 카페 이용시 무료 관람
전시후기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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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금)~11월 6일(토)
서울시 용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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