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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미술관
제8회 종근당 예술지상: 양유연, 유현경, 이제
2021년 10월 7일(목)~10월 18일(월)
서울시 종로구
2021-10-13
제8회 종근당 예술지상: 양유연, 유현경,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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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세종미술관
회화는 기원을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다가오는 힘이다. 회화는 가장 개인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작가가 견디고 버티고 토해낸 시간의 특별한 표현이고 기록이다. 내적인 심리적 충만 상태를 지나 성찰적 사유의 운동 속에서 명상의 흔적 또는 이미지가 되면 이 이미지는 스쳐지나가며 소비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바라보고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반추하는 깊은 구조와 울림을 갖게 된다.

이름없고, 어둡고, 가볍고, 하찮은 것들이 내 감각을 날카롭게 찌를 때가 있다. 안개 같은 것들이 거대하거나 무서운 얼굴을 할 때도 있다. 작가는 그림에 몰두할 때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이 결합하는 환상을 본다. 통속적 인식 또는 평균적 경험을 벗어난다. 그림은 인생을 소모하는 망각이라는 질병처럼 느껴질 때도 작가는 세속의 평범 속에 숨어 있는 숭고한 순간들이 무한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독특한 신비(神祕)를 경험한다.

"시대의 불안은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투여되어 오롯이 각자가 혼자 겪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쉽게 공유하기 어려운 지점의 개인적인 사연들이 있을 뿐이다. 그 불안의 모습을 인물들로 빗대어 그려보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고 그 결과물들이 나의 주된 작업들이다." -양유연

양유연 작가는 오랫동안 망각하고 무심히 스쳐보낸 것들이 벼락처럼 다가올 때의 순간을 기억한다. 작가는 정지된 시간, 뇌리를 파고드는 어떤 예감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인지하는 것들은 세계와 현실의 아주 작은 부분들이다. 이미지는 생사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 불안이 일상화된 현실의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채집하고 회고(回顧)한다. 작가에게 회화는 오랜 시간 세밀하게 표현하는 인물과 손과 사물들의 순간의 기록이다. 회화는 일상과 세속의 욕망이 다루지 않는 세계의 잘 포착되지 않는 부분을 다룬다.

"내가 그린 인물은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죽어 있는데 죽은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보여진다." -양유연

양유연의 그림 속 인물은 잠을 자거나 어떤 상태에 빠져들어 있다. 또한 결코 한 인물의 전신 또는 한 사물의 모습 전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인물이나 사물의 특정한 일부분만이 포착된다. 그것은 부분이고 파편이지만 무겁고 깊은 표면을 가지고 있다. 스쳐지나가는 부분들과 표면들이 깊고 무거운 심지어 숭고하기까지한 대상이 된다. 거대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아니 대상이 본래 지녔을 존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흔들리는 몸을 마주하며 여린 단계의 감각들을 만나고 있다. 관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 같기도 하다..." -유현경

유현경 작가의 인물과 풍경은 붓질과 채색의 흔적으로 캔버스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우고 있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붓을 휘갈기며 후벼 파낸다. 공허하고 헛헛하며 메마른 공기가 흐른다. 분명한 기억이 아닌 거의 망각의 입구에 한 발을 넣고 있는 시간의 이미지이다. 길게 늘어놓은 그림자의 한 귀퉁이,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은 순간이다. 회화는 무의식에 층층이 쌓아 놓은 어떤 힘을 느끼게 한다. 감정을 유발하고 흔드는 극적 상황이 느슨한 관계성으로 해체되며, 표현이라기보다 흔적에 가까운 속도감으로 분할되는 인물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런 방식으로 대상이 오롯이 드러나는 그림으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그림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그림은 관계 양상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도 아닌 것이다. 아끼는 것들을 위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아무것도 해하지 않는 것으로의 그림을 그려본다. 그림을 그린 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그림으로 누군가를 해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유현경

신체적, 의식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양상이 바뀜에 따라서 고통의 양상이 바뀐다. 누군가를 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애초에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 존재하고 관계하는 것 자체가 상처이고 고통이라면 말이다. 관계와 소통이 나 자신에게 향할때 시야가 바뀌고 새로운 지평이 펼쳐진다. 그러나 염려하고 돌보아야 하는 일상에서 관계 없는 삶이란 환상이거나 불가능한 도전이 되곤 한다.

우리는 타인을 항상 염두하며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소수의 작가들은 살아가는 과정에 주어진 관계를 하나하나 버리며 점점 하나의 관계의 극단으로 나아간다. 마침내 관계 중심의 작업에서 관계를 망각하는 '실존'의 시간대로 넘어간다. 아무런 매개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과 직접 마주하는 시간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창작은 일상과 보편을 벗어나 특수와 비일상의 순간을 직관하며 독특한 자신만의 무언가를 토해낸다. 작가들은 각자 처한 상황과 성향에 따라서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유현경 작가의 이미지는 본래 주어져 있기에 불가능한 도전이 되어버리는 실존의 그림자들이다.

인식적 또는 영적 도약을 표현한다는 것은 매 순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많은 긴장과 갈등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서 불완전한 상태를 전제한다. 거기에서 출발해 회화는 자연스럽게 존재, 무한의 문제를 향한다.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잠시 보게 된다. 무한은 자기 모순, 패러독스를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작가들은 평생 고투하며 내적 모순과 갈등의 원인을 해석하고 표현한다. 그 과정은 의식과 무의식, 직관과 이론이 융합되어 운동한다. 이러한 운동이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 어떤 이미지 또는 형태를 가지거나, 아니면 형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와 개념, 직관적 통찰과 이성적 명상이 결합된다.

"캔버스 위의 장미는 알아보기 쉽게 혹은 아름답게 재현되어 있지 않다. 누구나 알고, 기억하지만,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미의 이미지를 다시 바라보고,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은 재현적 대상에서부터 점점 멀어져 '그리기' 자체의 흔적으로 캔버스에 남겨진다." -이제

이제의 회화는 세계의 주민이 자기 존재의 뿌리를 잃어버린 시간을 담고 있다. 어두운 밤 빛나는 꽃밭에서 여인들이 춤을 춘다. 여인들이 자기를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채 광기로 치부되어온 시간은 역설적으로 더 화려하게 멋있고 자유로운 에너지로 넘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말처럼, 여인들의 축제를 신비하게 연출하고 있다. 외할머니의 무덤은 여인들이 시공을 초월해 축제를 벌이는 광장이 된다. 어둠 속에 발광하는 흐릿한 꽃은 마치 문명을 응시하는 자연, 세상을 바라보는 야생의 눈동자가 되어버린다.

세계는 세계 그 자체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우리의 인식능력이 세계 전체를 인식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현인(賢人)에 따르면 세계의 인식은 은유(隱喩)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세계의 인식이란 결코 있는 그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더 크게 또는 더 작게 인식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크고 작은 인식의 진동에서 우리는 세계 본래의 얼굴을 인식하게 된다. 시각이미지의 운동으로 결합된 회화란 이런 점에서 은유의 총화라고 볼 수 있다. 성공적인 은유란 언제나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거나 너무 늦게 온다. 우리는 언어에 갇혀있다. 따라서 우리가 미술을 감상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때 사용하는 언어, 특히 개념어들은 매우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얼마전까지도 우리는 현대미술을 '텍스트'라는 관점에서 비평하고 해석하고 설명했던 적이 있다. 텍스트로서 현대미술은 우리가 공감하기에 창백하고 건조하다. '텍스트'라는 용어는 '추상'이나 '개념'과 같은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재현과 표현으로서의 미술이 개념과 추상으로서 그리고 이론으로서의 미술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정작 미술의 존재론적 기초였던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감정과 사유는 망각되어 왔다. 작가는 작업의 순간 그것을 감지한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매끄럽고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인식되고 경험된 회화의 감각은 과거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지나버린 시간이 아니라 마치 썰물과 밀물이 번갈아가며 교차하듯 우리의 시간 감각을 교차하며 과거는 현재, 미래와 혼합된다. 그러면 이미 인지된 회화감각이 마치 새로운 것으로 느껴지고 새롭게 경험되는 세계가 되어버린다. 캄캄한 밤 쏟아지던 비가 멈추면 후각을 폐속 깊이 채우는 물비린내처럼. 그러나 그 과정은 오랜 시간 긴장과 갈등, 불편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 길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무수한 시간과 사건 속에 파도의 썰물과 밀물처럼 펼쳐지고 응축되는 반복의 무한성 속에 예술적 표현과 흔적이 분명해진다. 근대 이후 예술가들, 현대미학의 관심은 개인의 삶, 의식과 무의식, 개인과 사회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숭고(崇高)이다. 세계이든 내면이든 숭고미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여기에 무한성과 영원성의 문제가 동반된다.

회화는 힘과 긴장, 균형의 해체, 쏠림과 치우침이 있다. 동시에 우리가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반복해서 만나고 어울렸던 사건과 관계들의 어둡고 무거운 회고(回顧)의 또는 사유의 그림자들이다. 타자와 세계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또는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작품과 관객 사이에 펼쳐진 안개처럼, 미묘하게 운동하는 모호함과 복잡성을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타자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버릴 수도 없다. 작가들은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인식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손에 쥐고 있다. 더 예민하고 정교하게 정체성의 문제에 집중한다. 관계와 소통, 대화와 공감을 통해 타자와 균형 있는 공존을 팽팽한 힘의 조화로 구성해내려 한다. 이미지와 이야기는 영원히 되돌아가야 하는 누군가의 초상 또는 세계의 '얼굴'이다. 영원한 회귀와 반복의 운동 속에서 영원성에 근접한 미적 형이상학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것이다.

이번 종근당예술지상 전시에 초대된 양유연, 유현경, 이제의 작업은 30~40대 여성 작가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마음과 그 마음의 명도와 채도, 그리고 강렬하거나 유연한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결코 도달할 수 없지만 매혹적인 회화의 무한성을 은근하고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

설명 가능하고 이해하기 쉬운 회화란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식과 정보에 귀속될 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본 일상의 얼굴이다. 회화는 결코 호수나 거울에 반영된 이미지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그 너머에서 세계의 얼굴을 비추는 운동이다. 세상이라는 항구에 영원히 정박할 수 없는 무한의 항해이다.
운영시간TIME
월~일요일 11:00~19:00
휴관일HOLIDAY
휴관일 없음
전시참여PARTICIPATION
· 작가: 양유연, 유현경, 이제
· 글: 김노암
· 주최: 세종문화회관, 한국메세나협회
· 주관: 아트스페이스휴
· 후원: 종근당
작가소개ARTIST
내용없음
전화PHONE
+82 (0)2-399-1000
관람료FEE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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