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갤러리
종료
설고은: 애프터, 이미지After, Image
2022년 5월 14일(토)~6월 10일(금)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2022-05-10
포켓 0회POCKET
조회 185회VIEW
로그인하신 뒤 이용 가능합니다로그인
길안내NAVIGATION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32길 2-3(이태원동 211-22)
네이버NAVER
카카오KAKAO
구글GOOGLE
바로가기HREF
예약하기BOOKING
포스터POSTER
edit노트NOTE
설고은의 그림에 쌓인 스무 겹의 층
글: 김준혁 (아키비스트, 관리자 방문 후기)

전자 기기의 화면 속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이미지, 설고은 작가는 이 이미지들이 남긴 머릿속 잔상을 그림으로 옮기는 듯하다. 그 이미지들 속에서 ‘무엇인가 찾으려 했거나 아니면 쫓으려 했거나 또는 붙잡으려 했던 수많은 시도’는 차곡차곡 쌓여 한 폭의 그림에 ‘스무 겹의 층’을 남겼다. ‘화면 속을 오갔던 시선의 흔적, 그리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끌고 당겼던 흔적, 또 밝은 화면 빛이 눈가에 남긴 흔적’, 이 흔적들은 그림의 가장 위층에 ‘폭이 두꺼운 브러쉬 스트로크 형태, 그리고 픽셀 조각처럼 각진 은빛의 크롬 조각’으로 남았다. ‘분명하고 또 복잡했던 이미지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흐릿하고 또 단순한 형태의 색깔 덩어리들’로 바뀌어 그림의 중간층을 차지했다. 색을 작은 입자 단위로 칠할 수 있는 에어 브러쉬란 도구를 사용했고, 일부 형태는 속이 아닌 바깥부터 모서리를 따라 칠했다. 덕분에 그 색깔 덩어리들은 기억이 바랜 듯 속을 향할수록 흐릿해지는 인상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흐릿한 이미지를 분명히 하려 했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수많은 겹으로 덧씌워진 그림의 가장 아래층을 보면, 희미한 ‘펜 자국과 폭이 얇은 브러쉬 스트로크 형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설고은 작가를 통해 화가가 가까이 하는 곳을 생각한다. 지난 동안 자연이 가까운 화가는 자연을 그렸고, 도시가 가까운 화가는 도시를 그렸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림에 쓸 수많은 색상과 형태를 찾았고, 알맞은 형식과 기법을 빌려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는 달리 말해 화가가 어느 곳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는 말과 같다. 오늘날 화가들은 자연과 도시만큼 ‘16:9 비율의 컴퓨터 화면, 그리고 9:16 비율의 휴대폰 화면’과 가까운 삶을 산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많은 화가가 그 화면 속에서 발견한 바를 그림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인다. 설고은 작가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발견한 형태와 동작의 수’가 많고 ‘겹과 층의 깊이’가 깊숙하며, ‘색과 칠의 밀도’가 높고 ‘전면과 측면의 마감 모두’가 깔끔하다. 또 한 폭의 그림마다 ‘빛으로 나타난 색상 값(HexCode)’과 ‘물감으로 나타낸 색상 값(Paint)’ 그리고 ‘형태(Type)’와 ‘농도(Opacity)’ 또 ‘도구(Tool)’를 층별로 정리하여 밝힌 점이 섬세하다.
전시EXHIBITION
전시소개DESCRIPTION
AFTER, IMAGE
글: 최지원 (시각미술가)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정말이지 간단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네모난 틀, 그리고 그 안을 위아래 가끔은 조금 왼쪽으로 아니면 간혹 오른쪽으로 까딱거리는 손가락. (주로) 엄지와 검지가 쭉 펴지고 움츠러드는 동안 나머지 손가락은 가만히 무게를 지탱한다. 그렇게 아주 작은 부분만이 좁게 움직이는 동안 화면에서는 읽을 수 있고 없는 것들이 덜컥 등장했다 미련 없이 떠난다. 가령 메일앱을 켜서 받은편지함을 확인하고 메모장 모양의 아이콘 위에 손가락을 올려서 켠 후엔 사파리를 열었다가 인스타그램으로 흘러들어간다. 엄지를 위아래로 쓱쓱 미끄러뜨리다가 종종 어느 지점을 건드리고 이번에는 유튜브로.... 손가락이 한동안 문지르던 스마트폰 화면이 어느 순간 검은색으로 단칼에 뒤덮인다.

설고은의 작업은 그렇게 불쑥 사라져버리기 전에 보았던, 보았지만 고이지 않고 흘러가버린 것들에서부터 시작된다. 한참을 위아래로 미끄러뜨리고 켜고 끈, 영상과 그림과 문자와 소리가 뒤썩인 이미지가 한바탕 지나간 이후 시작된다. 우선 잔뜩 보았던 지난밤의 화면을 헤쳐 본다. 손가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던 이미지들은 하지만 그것과 맞바꾼 뭉텅이의 시간처럼 한데 뭉쳐 벌써 어렴풋해졌다.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옮길 때면 간신히 실루엣만 남은 뿌연 잔상이 두둥실 따라붙곤 한다. 마치 떠나지 말라는 듯이 눈에 매달리지만 깜빡임 몇 번에 금세 사라진다. 뭉글한 형상으로 얼핏 기억하는 잔상을, 그렇게 웅엉거리는 희미한 흔적들을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아채 캔버스에 뚜렷이 흡착시킨다. 네모난 화면이 까맣게 뒤덮이기 전 빛을 뿜어내던, 지난밤의 잔상들에 물감의 이름으로 색을 할당하고 순서와 투명도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미끄러져가던 그것들을 붙잡는다. 다시금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이제 이미지가 옮겨진 캔버스를 바라본다.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먼저 보인다. 모두 와글와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다. 이제 좀 더 훑으며 구분하고 구별해본다. 설고은의 캔버스는 두개의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갖가지 네모들과, 이리저리 활보하며 벋친 얇고 두꺼운 곡선으로 뒤덮여있다. 붓 대신 에어브러시를 거친 물감은 발려있다기보다는 입자로 흩뿌려져있고, 그렇게 형상들은 미약하게 울퉁불퉁한 캔버스의 표면을 메꾸어가며 안착된다. 선명하게, 혹 반투명할지라도 뚜렷하게 각자 자리를 차지한다. 같은 자리를 공유하며 겹을 이루더라도 물리적인 높이를 생성하지는 않는다. 쌓이고 쌓이지만 두툼해지지는 않는다. 대신 투사되듯 겹치고 겹쳐 캔버스 표면에 더욱 찰싹 달라붙는다.

미약한 움직임만으로도 옮기고 볼 수 있었던 이미지들이 남긴 잔상은 그만큼 미약하게 금세 어렴풋해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미끄러지던 잔상들이 안착된 캔버스 위에서, 여기서는 사라지기는 커녕 끝없이 불어난다. 계속해서 연결되는 캔버스만큼의 몸집을 불려간다. 그렇게 설고은은 쉼포를 사이에 두고 잔상(after)과 이미지(image) 사이를 겅중겅중 오가며 눈 깜빡임 몇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 잔상으로 일구어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운영일HOURS
· 화~토요일 12:00~19:00
휴관일HOLIDAY
· 일~월요일 휴관
전화PHONE
· +82 (0)2-6397-2212
메일MAIL
· spectrumgallery2020@gmail.com
참여MEMBER
· 작가: 설고은
· 글: 최지원
요금FEE
· 무료
작품WORK
작가소개DESCRIPTION
작가노트
글: 설고은 (작가)

잠이 오지 않는 밤은 매일이다. 아니다, 잠에 들기 싫은 밤이 계속이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사용한다. 아니다, 내게는 사용이라는 단어에 짙게 깔린 특정한 의도와 목적성이 부재한다. 작은 화면에 언어와 숫자, 이미지가 끝없이 떠오르는 것을 본다.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보지만 강렬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오른손 엄지로 화면을 기계적으로 스크롤 한다. 손가락을 위로 쓸어올리는 것 이상의 에너지가 들어가는 활동은 하지 않는다. 밤 9시부터 자동으로 켜지는 “Do Not Disturb” 기능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체의 연락을 차단해주고, 나는 소통을 자발적으로 거부한 채 누군가 디지털 세계에 남겨놓은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을 은밀히 지나친다. 대략 30초, 길어야 1분을 넘기지 않는 짧은 영상들과 단편적인 이미지의 조각들을 넘기고 또 넘긴다. 오랫동안 화면을 바라봐 빡빡해진 눈의 통증을 무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억이 끊기고 기절하듯 잠에 든다.

다음날이 온다. 내가 지난 밤에 보았던 것은 정말 본 것일까. 스치고 지나간 시각적 자극을 되짚어보지만 개별적인 이미지와 영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흐릿하다. 대신 빠르게 점멸하다 스믈스믈 이동하며, 부지불식간에 증식하는 것들에 대한 인상만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들과 어둠속에서 핸드폰 화면의 네모난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희뿌연 빛무리에 대한 어렴풋한 잔상.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지난밤의 궤적을 따라가본다. 얇은 파편들과 비슷한 조각들을 겹겹이 쌓아 길을 만들고, 이들을 곧 다른 크기와 색깔로 변주한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순차적으로 칠하고 흩뿌린 끝에 원점 (0,0)으로 사용될 하나의 캔버스가 완성된다. 이를 기준으로 위아래, 오른쪽과 왼쪽에 새로운 캔버스들을 연결해 동일한 규칙 아래 칠하고, 뿌리고, 겹치고, 잇고, 지우고, 연결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 한다. 흐릿한 잔상과도 같은 이미지가 순환하듯 프레임 밖으로 생성되는 화면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상상해본다.